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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네 이발관과의 인터뷰 (KINO) by whati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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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1 13:1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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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hatisid.net/whatisidlog/?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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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내기 전에는 사이버 밴드의 출현이라며 화제를 모았고, 앨범을 낸 후에는 대중음악과 롯 스피릿 사이의 엇갈린 기준에 의 한 엇갈린 반응을 마주했던 언니네 이발관. 리더 이석원(71년생. 보컬/기타)과 류기덕(73년생. 베이스), 유철상(75년생. 드럼), 정 대욱(79년생. 기타)으로 구성된 이들은 정대욱의 입시와 유철상의 입대 문제로 당분간 활동을 쉴 계획을 하고 있었다. 95년 2월의 팀 결성부터 96년 11월 7일의 앨범 출반, 그리고 지금까지의 시간속에 겹겹이 쌓인 것들을 이자리에서 함께 정리해보자며 인터뷰를 시작 했다.
시작부터 이야기 해볼까요? 통신을 통해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이석원 : 하이텔 음악 동호회 중에 헤비메틀 동호회가 있다. 92-3 년도쯤에 너바나가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뜰 당시에 그런 지나 얼터너티브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 틀의 한 조류로 취급받았었다.너바나를 딱히 다룰 공간 이 없어서 헤비메틀 동호회에서 다루게 되었고, 그러다 가 자연스럽게 그런지가 유행되면서 동호회 내에 모던 록 게시판이 생겼다. 그 안에 음악감상 모임 '모던 록 소모 임'이 생겼고, 우리넷은 다 그곳에서 만났다.
밴드결성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석원 : 시작은 좀 얼떨결에 했다. 내가 통신에 글을 쓸때 나를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가상의)밴드 리더라고 소개했다. 당시에는 밴드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음악동호회라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밴드를 안했다고 하면 괜히 처 지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웃음). 가상의 밴드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 드가 정말로 있는줄 믿었다.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나가 게 되었을 때도 똑같은 거짓말로 소개를 했는데, 그때 사 람들이 확실히 믿게 되었는지 류기덕이 베이스를 치겠다 며 찾아왔고, 유왕길이라는 친구가 키보드를 맡겠다고 나 서서 팀을 만들게 되었다. 유철상은 막판에 내가 '찍어서' 영입했다.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길기 때문에 드러머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네명이 모였다. 팀원들에게 내가 기타를 친다고 말을 했지만 난 기타를 못쳤다. 그래 서 계속 합주를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핑계거리가 없어질 때 즈음에 아는 친구에게 기타를 배워서 40일 연습하고 처 음으로 합주를 했다. 그날이 95년 2월 15일이다. 모두 음 악적 경력이 일천하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했지만 나부터 이론적인 면을 전혀 몰라서 같이 알아나가는 식으로 했다. 때문에 굉장히 충돌이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키보다가 적 응해내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거 짓말을 한지 꼭 1년만에 다시 출연했을 때는 우리 노래를 가지고 나가서 틀 수 있었다. 다시 통신에서(내 입으로 말 하기는 뭐하지만) 센세이셔널한 반응이 있었다. 그 때 방송 을 듣고 팬이 생겼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정대욱이다. 기타 두대로 더빙한 데모 곡을 연주할 수 없어 고민하다가 기타 를 하나 더 들이기로 결정하고 통신 대화방에서 대욱이에게 의향을 물었다. 기타를 산 지 한달밖에 되지 않아 도저히 안될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점이 우리맘에 쏙 들어 합류하자 고 했다. 그렇게 해서 95년 6월에 현재의 멤버가 갖춰졌고, 드럭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홍대 근처의 무대에는 거의 다 서봤다. 드럭, 재머스, 프리버드, 스팽글, 블루 데블등.
이번 앨범의 곡 중에 데모 테이프에 있던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제일 먼저 만든 곡과 제일 나중에 만든 곳이 무엇이며, 그 사이에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건가요?
이석원 : [로랜드 고릴라]가 처음에 만든 것이고, [상업그런지]도 초 기에 만든 곡이고... [미움의 제국]같은 곡은 최근에 만든 거다. 기간은 1년이 넘게 걸렸다.
단일 앨범안에서 시간의 흐름, 변화의 흔적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 떤 변화였는지 궁금합니다.
이석원 : 그런데 우리는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즉시 음악을 만 들었고, 그 동안 살아오면서 음악을 찾아 들어서 자연스럽 게 몸으로 체득한 감각(작곡 이론 등이 아니라)에 완전히 의존해서 곡을 만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앨범의 음악적 컨 셉트나 방향을 잡는다든가, 곡을 만들 때 어디제 주안점을 둔다던가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멜로디건 리듬이건 무엇이건 간에 단지 '들어서 좋다'라는 느낌을 가장 중요 하게 생각했고, 항상 넷이 합의해야만 채택했다. 변화라 면.... 이런 것은 확실하다. 앨범을 내고 나서도 내기 전 과 변함없이 곡을 써왔는데, 앨범을 내기 전에 썼던 곡들 과 분위기가 아주 달라진 것을 느꼈다. 앨범을 낸 후의 상 황이 굉장히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곡들이 좀 어둡고 우울했다.
먼저 만든 곡들에는 분방한 느낌과 거침이 있고, 뒤에 만든 곡들에는 좀 다듬어진 느낌이 듭니다. 가사는 특히 그렇구요. 정체성을 잡아나 가는 과정에서 겪은 변화들 때문에 곡이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 을 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공유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이석원 : 대한민국의 다른 팀들하고 완전히 다른 것이 한 가지있다. '곡의 좋음'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밴드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전에는 좋은 곡, 곡 자체 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밴드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연주하려면 곡이라는 형태가 있어야 하니까 곡을 만드는 개념, 즉 곡 자체는 부수적인 것이 되어 있는 분위기가 만 연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소위 '음악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 무지션'들, 그들은 내가 봤을 때 단지 더 좋은 테크닉 을 연마하고 그것을 최고로 좋은 사운드에 실어서 관객들에 게 보여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사람들이다. 만일 산신 령이 나타나서 최고의 작곡자와 치고의 연주자 중에서 하나 의 능력을 주겠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다 포함해 최고의 작곡자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100명 중에서 1명도 안될 것이다. 100명 중에 99명 이상이 최고의 연주자가 될 능력을 달라고 답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들 곡 자체에 대한 집착은 전무하다시피하 다. 그러니까 프로 그룹이 된지10년이 넘어도 자기 음악이 뭔지 찾지 못하고 2,3년 전에 나온 외국의 이름난 밴드들의 스타일을 좇아서 앨범을 만드는 웃지 못할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다. 소위 밴드를 한다는 사람들이 곡 자체 보 다는 연주나 사운드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판단에 대한 공 유가 우리를 뭉치게 했다.
언니네 이발관 하기 전에 제일 좋아했던 밴드가 있다면?
정대욱 : 롤린스 밴드라고 이상한 근육질의 남자가 펑크를 하는 밴드 가 있는데 올드 록 풍의 리프를 반주를 깔고 거기에다 멜로디 없이 악을 쓰는 보컬을 넣은 음악을 하는 밴드이다. 음악은 우리 음악과는 조그만 교집합도 없는데 그 카리스마에 매료되어서 그 사람을 아주 좋아했다.
유철상 : 최고의 밴드를 말할 수는 없다. 언니네 이발관하기 전에 데쓰메틀이나 과격한 음악을 들으면서 헤드 뱅잉도 하고 그랬지만 팝 음악도 들었는데, 당시 최고라고 꼽았던 밴드나 음악은 취향이 달라지면서 잘 떠오르지 않으니까. 바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주제가는 어렸을때 이모도 듣고 엄마도 듣고 했던 헨리 맨시니 음악이다. 요즘 들어서 자장가 처럼 느껴지고.... 인정할 만한 밴드는 서로 다른 이유로 너무나 많지만 하나를 말하기는 힘들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밴드라면 일본 인디 록 그룹 피시만즈라는 밴드의 음악이다. 정말 충격적이었고 너무 좋았다. 우리 맴버들도 좋아하구.... 최고라는 건 아니고.
류기덕 : 처음 음악 듣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좋아하는 그룹은 레드 제플린이다.
이석원 :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할수있는 그룹은 펫숍 보이즈라 는 영국의 댄스 듀오이다. 그들의 음악은 나에게 음악 외의 부분들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완전히 감정을 지배했다고 할 까?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인트로스펙티프 Introspective> 라는 3집 앨범을 듣고 음악적인 충격을 받아 거의 몇년을 헤어나오지 못했을 정도다. 엄청나게 좋았다. 그 이후에 나 온 앨범 <비헤이비어 Behaviour> 의 [Being boring]은 [My October Symphony]와 함께 내 필생의 명곡 베스트에 든다. 지금까지 1만번도 더 들었고, 내 인생의 백 뮤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머리 속에 항상 흐르고 있다. 나는 음악에는 애수와 어두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음악이 펫 숍 보이즈 류의 음악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멋진 음악의 그 무엇이 펫숍 보이즈에 있다!
이 앨범에 대한 소개랄까, 감상의 힌트를 준다면?
이석원 : 우리음악은 소꿉 장난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할까? [소년]은 곡이 진행되다가 완전히 이상한 별개의 곡이 들어갔다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자는 액자 구성이다. 보통 가요의 경우 A-B-C-B-C 식 구성 전개방 식이 있는데, 우리의 [동경]같은 노래는 C에 해당하는 부분 (보컬에서 후렴구 같은 부분)에 보컬 대신에 기타로 들어간 다. 가요 음반회사에 있는 분들이 'C가 없잖아' 그러더라. 그것도 참 재미있다. 우리 4명이 작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 서 만들었기 때문에 해괴한(?) 구성들이 많은 것 같다. 전형 적인 가요, 즉 노래 패턴의 기승전결이 완벽한 곡이 몇곡 안 된다. 그런 부분을 주의해서 들어본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푸훗]은 동일반주 곡으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반주는 똑같고 보컬 멜로디는 다르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동경],[보여줄 순 없겠지]는 원래 한곡이었 는데, 두곡으로 해서 접속곡이로 이었다. [산책끝 추격전]도 두개의 드라마가 하나로 엮여져 있는 곳으로 한곡 같은 느낌 (한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넘어갈 때 단절되는 느낌이 없고 따라나오는 느낌, 이 부분이 정말 앞곡에 이어 나와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것이 우리가 즐겨 하는 구성인 것 같다. [푸훗],[소년]도 그렇다.
[로랜드 고릴라]도 흥미로웠습니다.
이석원 : [로랜드 고릴라]도 '노래'가 아니다(웃음). 보컬이 세 단락 나오면 1절 2절 3절이 있어서 A가 세번 반복되는 것이 일반 적이다. 그런데 이 곡은 ABC로 구성되어 있는, 전체가 1절이 며 그것으로 끝나는 노래다. 노래방에서 거부하는 이유가 되 는 재미있는 구성이다. 노래는 조금 나오는 데다가 달랑 1절 만 있으니까 따라 부르기도 힘들고, 후렴구에서 신나가 막 함께 부를수도 없으니까.... 온전히 노래같은 모양을 갖춘 곡은 [쥐는 너야][생일기분]정도이다. [생일기분]은 우리가 최대한의 상업적인 효과를 노리고 만든 건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최악의 곡이 되어버렸다(일동 웃음). 데모 앨범 때는 반응이 제일 좋았다.
가사는 이석원씨 혼자 썼지요. 이중적 자아, 분절적 자아의 독백같아 보였습니다.
이석원 : 20대 초중반의 열패감에 빠진 소년의 자아와 내면의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상념 같은 것들을 스케치하는 식으로 썼다. 만 약에 생일이라고 하면, 내 경우에 '오늘은 생일인데 왠지 우울 하다. 기분이 똥이다'는 기분이 드는데, 그런 상념을 스케치 하는 식으로 노랫말을 썼다. 나와 다른 나라는 생각도 있었지 만, 관계에 대한 문제도 있다. [쥐는 너야]의 가사는, 내가 만 나는 사람마다 다 실망하는데 결국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실망 의 대상일 수도 있으니까 결국 '쥐새끼는 너(나)다!'라는 자조의 의미로 쓴 것이다.
판매는 어떻습니까? 판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나요?
이석원 : 올해 나온 록 앨범 가운데에서 음악 외적인 변수를 타지 않은 앨범중에는 노이즈 가든이 가장 많이 팔렸고(2만장 정도), 우 리 앨범이 두번째라고 들었다. 앨범을 만들때부터 가능한 상업적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업적인 음악은 바로 이런 것(자신들의 앨범을 가리키며)이다. 우리 생각에 상업적인 것이란 '어떤 음악을 듣고 좋다고 느껴서 사게 되는것' 이다. 단순하고 순진한 공식을 믿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음악을 만들어서 앨범에 담았고 이걸듣고 사람들이 좋아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고, 상업적인 성과를 상당히 기대했다. 많이 판 것은 사실인 듯한데 우리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내용적인 반응들은 어땠습니까?
이석원 : 우리나라가 외국과 다른 점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이나 장르 구분이 불명확하고, 가요라는 단일 장르에 모든 음악들이 마구 믹스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자기 음악의 정체성이나 어떤 작가적인 색깔에 통일성이 없는 사람 , 백화점식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티스트 대접을 받는 그런 황당한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외국에서는 듣는 사람과 연주 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음악이건 간에 모든 대중 앞에 노출되고 불특정 다수한테 각자의 관점으 로 난도질 당하고 평가된다. 우리 음악을 '모던 록'이라고 치면(우리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모던 록 에 정통한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은 뭐라 그럴 수 없어도 모던 록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녹음이라든지 이런 기술문제로 말하자면, 해외의 인디 록 밴드의 앨범 중에 우리보다 100만배쯤 음질이 나쁘고 10배 정도 연주를 못하는 앨범을 우리 넷이 합쳐 몇백장 이상 가지고 있다. 장르적인 특성을 전혀 무시한 일방적인 잣대로 평가 받는 현실이 많이 힘들었다. 우리나라는 정말 언더그라운드여야 할 때 언더그라운드로 놔두지도 않는 나라이다.
앞으로 대중성이나 여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 고민을 해 보았습니까?
이석원 : 그런 고민을 너무 많이 했었다. 우리 생각에는 최상인 곡들 만을 모아 앨범을 내는 거니까 우리 앨범이 나오면 한 마디로 난리가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난리가 안 나더라!(웃음) 그 원인을 생각해 봤다. 모던 록 밴드라고 했을 때에 우리나라 가요 음악계는 아직도 너바나류의 얼터너티브나 좀 헤비한 그런지 등의 때려 부셔주는 사운드를 원하는데 우리는 전 혀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같은 음악을 놓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대중들이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틀리 다는 것을 앨범을 내고서야 알았다. 예를 들어 카펜터즈라는 밴드의 곡을 듣고 우리는 '정말 천상의 멜로디이다. 곡들이 절절하게 와닿는다'고 하는데, 대중들은 '이지 리스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듣기 편하고 쉬운 음악'이라는 표현안의 각각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던 거다. 우리가 만들 때는 정말 애수가 철철 넘치는 절절한 곡이라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들었을 때에는 '편하고 쉽군'으로 받아들인다 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상업적 판단을 실수한 면이 좀 있다.
앨범 나온후 갈등이 심했다고 하던데요?
이석원 : 우리의 앨범이 사람들 앞에 내던져지자 소수가 받아 들여 주기는 했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난도질을 해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일단 그다지 의연하지 못했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 돌을 던져도 신경 안 쓰고 앞만 보고 걸 어가는 게 아니라 세명은 가는데 한명은 남아서 이 돌을 집어들고 '왜 던졌을까? 그 돌은 뭘까?' 고민했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너 뭐하고 있는거냐, 왜 신경쓰냐?'고 하고, 그는 '신경써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식의 다툼들 이 끊이지 않았다. 너무들 예민해져서 아주 사소한 문제 가지고도 심하게 다투곤 했다.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채널 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것은 앨범을 내고서야 깨달았다. 우 리는 우리 음악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논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화의 방식이 완전히 일방 적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가만히 모든 것을 듣고 앉아 있어야만 되고, 그것이 뮤지션의 자세라는 식의 불가항력적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에 처음엔 적응을 못했다. 통신 게시 판에 누군가 우리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을 때 거기 대해서 '그렇지 않다. 너 죽고 싶냐?'라며 싸움박질도 하고 그랬 는데, 이제는 그런 문제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하이텔에서 시작한 팀이니 통신 공간을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석원 : 우리 경우에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앨범이 나온 시기가 작년 한 해동안 언론을 장식했던 현상에 맞물리는 화제성을 갖는 시기였다. 드럭의 예를 들자면, 언론에서 음악에 대한 언급보다 '펑크, 대안적 문화'라는 시선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반발감이 컸었다. 언니네 이발관도 'PC 통신의 사이버 밴드'라는 화제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앨범이 나오자마자 거센 반발이 일었다. 그래서 통신에서는 오히려 지지받지 못했던 것 같다.
팀이 결성되고 지금까지 오면서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요?
유철상 : 음악이라는 거 하나 때문에 남남들이 4명 모여서 그렇게 싸워가면서 해온 것인데,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면에서 좀 성숙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팀에 들어오기 전의 시각이나 취향이 밴드에 영향을 받고 더 넓어진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문화적으로 척박한 땅에 이런 밴드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 내 욕심으로는 내 인생을 음악으로 도배하고 싶다.
음악을 하는 방법을 드럼으로 선택한 셈인데요.
유철상 : 일단 기타는 줄이 있고 거기를 만지면서 쳐야 되는데, 드럼은 두들기면 되니까 아주 쉬워 보여서 드럼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리듬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치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구흥분되는 느낌이 있고, 섬세한 악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음악을 하는 도구로써 아주 만족한다.
입시 준비생 정대욱씨는요?
정대욱 : 대부분 동감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면부족, 그리고 천성적으로 반복적인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 반복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떤 좋은 노래가 들리면 그런 거 듣고 싶고, 곡이 완성된 후에는 반복연습해서 제대로 표현해야 하는데 다른 새로운 연주나 새로운 멜로디를 넣고 싶어하고. .... 그런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직장인 류기덕 씨에게 마이크가 돌아왔습니다.
류기덕 : 직장 생활(컴퓨터 그래픽)과 밴드 생활을 동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원래 좀 게으른 편인데, 어떻게 둘 다 할수 있었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한거 같다. 원래 음악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 음악은 듣는 걸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준 베이스 기타를 들고 왔다갔다 하고 노래 틀어 놓고 장난치곤 하다가, 언니네 이발관에 베이스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들어오기는 했지만 베이스를 전혀 칠줄 몰랐었다. 밴드생활 하면서 베이스를 배웠다. 나는 멤버라기보다는 언니네 이발 관의 팬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고, 여기서 연주하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리더의 입장에서 언니네 이발관을 엮고 있는 최대공약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석원 : 우리넷이 함께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 못하고 적응할 수 없는 분위기나 방식, 교감 하는 무엇이 있다. 그래서인지 유기덕이 나갔을 때 다른 베이시스트를 들여서 해봤지만 단 한곡도 제대로 같이 하기 어려웠다. 똑같은 곡, 똑같은 음을 치는데도 어딘지 아닌 것 같아서 같이 하기 싫었고,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보 면 다른 사람들과 하기 힘들고, 다른 데 가서 하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석원 : 여기 있는 누구도 자기가 직접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다가 음악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음악을 시작하면서 음악 듣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음악을 듣는 것이 짐이 되고, 일이 되고, 고통이 되는 것 같다. 그 것이 음악을 하면서 생긴 내 개인적 손실이다. 언니네 이발 관 음악에 대해서 자평한다면, 지독한 자기만의 편견과 오만 에 가득 차있다. 우리만의 음악에 대해,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 객관적이라야 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일천한 연주력을 보고서 "너희는 아마추어 고, 최소한의 기본도 되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 는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너희가 생각하는 프로는 누구냐? 너희가 우리 언니네 이발관 앞에 프로라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밴드가 우리나라에 누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 우리 팀은 '프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연주력에 대해 손 가락질을 하고 비웃어도 우리의 열정이 있기에 손톱만큼도 개의치 않는다. 최소한 언니네 이발관은 음악이 어떻다거나 음악을 사랑한다고 떠드는 사람들보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100배는 더 진지하다고 자부한다. 언니네 이발관이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고, 우리가 우리 음악을 만들고 쓰고 연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음악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약에 음악을 계속하게 된다면 더욱 더 지독 한 개성과 오만과 편견에 가득찬 음악을 만들 것이다. 2집 때는 더욱 못하는 연주와 못 부르는 보컬로 하고 싶다. 지독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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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네 이발관 본격 개점 (한겨레신문) by whati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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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1 13: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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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hatisid.net/whatisidlog/?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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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데뷔 앨범 [비둘기는하늘의 쥐]가 나왔다. 이 앨범은 컴퓨터 통신에서신랄한 필자로 이름 높았던 이석원이 이끄는 밴드의 첫 앨범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기존의 로커나 밴드들과는 전혀 이질적인 소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경쾌하고, 밝고, 복고적이며,멜로디를 강조한 소리다. 이들의 보컬은 가사를 또박또박 전하고 악기 연주도 또렷하게 들린다.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음악은 최근 국내에서 인기 상승 중인 얼터너티브 록의 거칠고 지저분한 소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음악은 본디 기존의 자기 색깔이 없는 대중음악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음악에 개입했던 언니네 이발관의 과거와 관계깊다. 이들은 앨범에 실린 모든 곡을 멤버들이 직접 만들고, 연주하고, 녹음했다. 심지어 보컬 멜로디, 기타 멜로디, 화음, 리프 연주, 아르페지오 연주, 구성까지 누가 만들고 연주했는지 앨범 재킷안에 소개했다. 이들의 가사는 대체로 이야기 구조가 명확치 않고 일상의 작은 일들과 상념들을 죽 이어썼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보지만 어제 아침과 다를 게 없잖아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푸훗]), "둘이 같은 나이에 다른 생각을 하고 둘이 같은 머리에 다른 가슴에"” ( [쥐는 너야]).
하지만 [팬클럽]이나 [로랜드 고릴라] [상업그런지] 등은 기존 음악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직간접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이제까지 록이 저항이라는 독단에 반대했다면 이제는 록이 저항 이 아니라는 독단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들은 록을 둘러싼 일체의 독단과 편견에 저항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최근 펑크 밴드들의 실험과 함께 우리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물줄기를 더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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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네 이발관 (팝스월드) by whati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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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1 13: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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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hatisid.net/whatisidlog/?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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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하고 해맑은 멜로디 안에 애수가 깃든 음악 /언니네 이발관 1993년 가을. 수입 음반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던 이석원은 자신의 가게에 손님 으로 찾아 온 윤병주라는 사람과 알게 된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그 둘은 금새 서로에게 이끌렸고 곧 친구가 되는데, 당시 윤병주는 노이즈가든 (NOIZEGARDEN)이라는 밴드에 적을 두고 있는 뮤지션이었고 이석원은 그저 음악 을 찾아 듣는 매니아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의 매니어들이 대분분 그렇듯 그간 공연장 한번 가본 적 없던 이석원은 윤병주를 따라서 밴드의 합주나 라이브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그에게 적 잖이 고무적인 경험이 되었다. 이석원은 한 마디로 펑크나 팝 계열의 음악 취향을 갖고 있어, 헤비메탈이나 아트 록 등에는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류의 사람이다. 국내의 음악 감상 풍토에 많은 문제 의식을 가져왔던 그는 그런 생각들 을 PC통신 게시판에 자주 토로하곤 했다. 그는 하이텔 헤비메탈 동호회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당시는 너바나(NIRVANA)의 열풍이 국내에 고조되면서 '얼터너 티브 메탈'이라거나 '그런지 메탈'하는 식으로 너바나도 헤비메탈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고, 시애틀의 그룹들을 중심으로 한 음반 소개글들이 건스 앤 로지즈 등과 함께 나란히 게시판을 장식하곤 하였다. 너바나가 도화선이 되어 소위 '모던 록' 이라 불리우는 일군의 음악 세력이 극소수의 매니어들에 의해 주목받던 94년 , 이석원은 시삽이었던 류기덕에게 건의하여 헤비메탈 동호회 내에 모던 록 전문 게시판을 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엔 동호회의 음악감상회에서 모던 록 스페셜을 기획,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당시 감상회 때 소개된 그 룹들은 소닉 유스(SOINC YOUTH),페이브먼트 (PAVEMENT), 대릴 안(DAR YLL ANN), 샬라탄즈(CHARLATANS),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틴에이지 팬클럽( TEENAGE FANCLUB) 등 이었는데 그 모든 아이템들은 헤비메탈이 아니라는 점에서 헤비메탈 동호회의 행사 내용치고는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것이었고, 모던 록 게시판으로 탈바꿈 한 그 게시판을 바로 이전에 L.A메탈을 주로 다루던 게시판이었다는 것 역시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주는 사실이었다. 가상의 그룹,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을 감상회를 치루고 난 뒤 본격적인 모던 록 감상 모임을 만들 생각 을 하게 되고 회원을 모집하여 '모던록 소모임'을 결성한다. 이러한 동호회의 활동을 하는 와중에 그는 자신이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다 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것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그룹 의 리더임을 늘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실상 그는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몰 랐으며, 언니네 이발관은 이석원 자신 외에 다른 멤버들은 있지도 않은 허구 의 그룹이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야의 라디오 프로에 출연하게 되 는데. 거기서 또 다시 자신을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소개한 다. "언니네 이발관'이란 이석원이 고등학교 1학년때 빌어다 본 일본의 비품 에로 영화 제목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렇게 장난 반으로 이름부터 지어 놓 은 그룹에 정말로 멤버가 생기게 되는데, 그 시작이 류한길이라는 인물이다. 류한길은 그 역시 키보드를 전혀 다룰줄 모르는 키보디스트로, 그 사실을 속 인 채 기타를 다룰줄 모르는 기타리스트 이석원과 의기투합 하였다. 두 번째 로 언니네 이발관에 찾아온 손님은 동호회의 시삽 류기덕으로 데스 메탈과 비틀즈.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던 학생었다. 그는 베이스를 맡기로 결정되었 다. 언니네 이발관은 통신상에서 점점 화제의 그룹이 되어 갔다. 당시만 해 도 우리나라에는 헤비메탈이 아닌 모던 록 성향의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호 기심과 기대는 배가되었던 것이다. 물론 관심을 끈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그 독특하고 재기넘치는 밴드명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이즈 가든 한편 '94년 초에는 노이즈가든이 멤버들의 신상 문제로 인하여 해산을 결 정함과 동시에 그 결산의 의미로 데모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데, 노이즈가든 의 데모를 들은 이석원은 말로는 다 할수 없는 충격에 빠지게 된다. 노이즈 가든은 그해 가을에 톰보이 록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이석원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10분 남짓한 길이의 바로 그 곡 로 마침내 대상을 차지하고야 마는데, 그 때의 감동이 결정적인 자극이 되어 이석원은 진지하게 밴드 활동을 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때 주변 사람 들에게는 언니네 이발관이 실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엉뚱하게도 꽤나 잘 하는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어, "다음 해엔 언니네 이발관이!" 하는 식의부 추김을 당했고, 이발관의 예비 멤버 세 명은 마치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양 흥분했다. 겨울이 오자 윤병주를 비롯한 주위 친구들은 이젠 정말로 밴드를 결성해 야 하지 않겠냐며 적극적으로 권유하기 시각했는데 이 무렵 드러머인 유철 상을 마지막으로 4인조 그룹 언니네 이발관의 라인업은 완성된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기타를 맡은 이석원 이었다. 베이시스트 류기덕과 드러머 유 철상은 그래도 연주 경력이 몇 달을 되었고 합주 경험도 있는 상태였지 만, 기타를 칠 줄 안다고 떠벌이고 다니던 리더 이석원은 정작 기타를 전 혀 치지 못했던 것이다. 첫 함주를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날 밤, 온라인으로 채팅을 하고 있던 중에 윤병주는 이석원에게 뜻밖에도 기타를 가르쳐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그러나 일급 기타리스트 윤병주에게 직접 기타를 배운다는 것은 일급 초짜인 이석원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또 무엇보다 평소에 어느 정도 치냐고 물어볼 ㄸ면 언제나 왠만한 곡은 칠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에 사실이 탄로나게 될 것이 마음에 걸렸고 가장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합주를 미룰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던 이석원은 결 국 손 한번 대지 않았던 중고 펜더 재즈마스터를 들고 과감히 윤병주를 찾아 간다. 첫날, 이석원은 파워 코드 잡는 법과 루트 음을 찾아 곡을 카피하는 법을 배웠다.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고 난 윤병주가 "자, 이제 어 디 한번 쳐보라"며 기타를 넘겨 주었는데 이석원은 아무것도 칠수 없었 다고 한다. 첫 합주 그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40여일 간 기타를 연습하고 난 후에 언니네 이 발관의 첫 합주가 '95년 2월 15일 저녁에 있었다. 첫 합주때 그들이 연습한 곳은 너바나의 . 인트로 부분을 이석원 이 치지 못했기 때문에 베이스가 대신하고, 대신에 이석원은 입에 거품이 나도록 한 시간 내내 똑같은 노래만 불렀다. 언니네 이발관이 비로소 살아 있는 밴드가 되는 순간이었다. 멤버들의 평균 연주 경력이 반 년도 안되는 그룹을 어느 합주실에서 탐 탁히 여길것인가. 그들은 이곳 저곳에서 무던히도 구박을 받았다. 합주를 마치고 나오면 대기실에 앉아있던 다른 팀들이 조소를 보내기 일쑤 였고, 노래마저 시원찮은 보컬리스트 덕에 듣다못한 합주실 주인 아줌마가 난 데 없이 도중에 들어와 보컬의 볼륨을 줄이고 나가는 사건마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주 못하는 밴드? 대단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밴드를 만들 생각은 어 떻게 하게 된것일까. 리더 이석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그렇게 국내 그룹들의 라이브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모 든 팀들이 연주와 사운드에만 매달리고 정작 음악 자체에는 전혀 무관심하 다는 것이었죠. 경력이 5년이 넘는다는데 정작 공연할 때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곡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죠. '도대체 저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전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밴드를 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합주를 시작한지 석달이 지난 오월의 어느날. 이석원에게 희미하게나마 존재하던 작곡에 대한 신념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일 년 전 출연하여 있지도 않던 그룹의 리더라고 사기극을 벌였던 그 라디오 프로에 다시 나가게 된 것, '너희 곡을 만들어 가지고 나가서 틀라'는 윤병주의 권유가 있었고, 이석원과 윤병주의 일주일 간의 밤샘 작업 끝에 세 곡이 태어났다. 이석원이 파워 코드를 배우고 나서 이리저리 손을 옮기는 연습을 하다가 엑스 자 형태로 반복해 치다보니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거기에 맞추어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우스운 오후>로 완성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그 코드들의 이름은 C-Am-Dm-G7으로 양희은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과 같은 가장 흔한 코드 진행이었다. 네 개의 코드를 끝없이 반복해 치는 이석원의 가슴 속엔 코드의 느낌만이 다가왔고 그저 그 느낌이란 것이 너무나 좋았기에 자연스레 멜로디가 흘러나왔으 며 그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우스운 오후>와 역시 파워 코드 두 개만을 반복 스트로크 하는 파워풀한 곡<로랜드 고릴라>가 전파를 타게 되자 통신상 에서 예상한 것 이상의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고 그때까지 언니네 이발관 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기대는 더욱 증폭되었다. 한 편 이석원과 마찬가지로 키보도를 치지 못했던 류한길은 결국 연주력 신장의 문제로 잦은 마찰을 빗다가 팀을 탈퇴하고, 방송에서 곡을 듣고 팬이 되었다는 연주 경력 한 달의 고교생 정대욱을 또 한명의 기타리스트 로 맞아들이게 된다. 이 후 그들은 자작곡에 몰두하게 되고 그들보다 월등한 연주력의 다른 밴들들이 그들을 비웃으며 남의 곡으로 합주를 마치고 나오면, 들어가서 서툰 연주로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는데, 시간이 좀 흐르자 베이 스 류기덕과 기타 정대욱도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풍부함을 더했갔다. 첫 공연 1995년 7월29일 토요일, 홍대 앞의 한 클럽에서 가진 언니네 이발관의 첫 라이브에서는, 만원 사례 속에서 페이브먼트, 틴에이지 팬클럽의 커버 와 함께 그들의 자작곡 <로랜드 고릴라>와 <소년>이 연주되었다. '건국 이래' 자신들의 곡으로 데뷔 무대를 장식한 팀은 그들이 처음이 아니였을 까. "자신의 노래를 하자." 이것은 언니네 이발관이 가진 최상의 모토였던 것이다. 같은날, 그들과 함께 공연했던 다른 프로(?)그룹들이 그들을 비 웃으며 남의 곡으로 연주력을 뽐냈음은 물론이다. 계속적으로 공연과 작곡에 몰두하던 그들은 '96년 2년월에 그간 만들어 넣은 곡 들 중 열 곡을 추려 데모 앨범을 냈는데 이름하여 "비둘기는 하늘 의 쥐". 이 데모 테입이 여러 제작자의 손에 들어갔고 마침내 그들은 그 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는 제작자를 선택. 윤병주가프로듀서로 이상문이 밴드와 함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96년 10월 데모와 동명 (同名)의 타이틀이 붙은 앨범을 완성하게 도니다. 기타를 너무 잘 쳐서도 아니었고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도 아니었다. 단지 음악이 좋아서 선택 된 것이었다. 그것이 언니네 이발관이다. 바보 커트 코베인 언니네 이발관에 손님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음악에 대한 이 해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코드 Cm를 쳤을 때 그것을 씨메이저가 주는 느낌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음 씨메이저군', '뻔한 코드군', '내가 아 는 코드군'하는 식으로 머리가 작동하는 사람에게 언니네 이발관은 단지 연습과 이론 공부를 더해야 하는 풋내기 아마추어 그룹일 뿐이다. 언젠가 어느 PC 통신 동호회의 대화방에서 웃지 못할 논쟁이 벌어진 적 이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 펄 잼(PEARL JAM)은 음악도 아니라는 것 이다. 그 이유가 정말이지 가관이다. "내 동생도 친다"는 것. 물론 자기는 동생보다 잘 친다는 설명도 곁들여서........ 이것이 국내의 현실이다. 카피가 아예음악적인 목표로 자리잡은지는 오래이고 작곡에 대한 개념은 거의 전무하다 만들 수 었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못되고, 단지 '이정도 '가피할수 있으면 그것으로 모든 성 취를 이룬다고 믿는다. 그 자리에서는 '커트고베인은 바보'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가 튜닝도 제대로 못하는 아마추어였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튜닝도 제대로 못 하는 아마추어가 전 세계를 들었다 놓았을 때, 그 사람은 아마추어 바보 가 만들어 놓은 곳을 5분만에 카피하고서는 이렇게 쉬운 곡이 어딨냐고 무시했을 생각을 하면 우습가기보다는 서글픈 심정이 되고 만다. 언니네 이발관 그들의 출발은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꾸밈없이 소박한 음악, 어설프지만 풋풋하고 신선한 아마추어리즘. 그들은 연주를 못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가해 봅시다. 그때 당신의 머리속에 정확한 음 정이나 고음이니 가창력이니 하는 개념이 있었습니까? 속주니 스케일이 니 하며 얼마나 연주를 정확하게 잘 하는지 점수 매기느라 바빴습니까? 그저 한 순간, 당신을 사로잡는 느낌. '어.... 이 부분 좋다..'하는 그 느 낌. 언니네 이발관이 들려줄수 있는 건 단지 그 느낌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의 본질이며 가장 순수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음악 자체에 주목했으며 곡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점차 분업화 되었다. 초기에는 각자 곡을 만들어 오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보 컬을 맡은 이석원은 보컬 멜로디에, 베이스를 맡은 류기덕은 베이스라인 에, 기타를 맡은 정대욱은 기타 편곡에, 또 드러머 유철상은 드럼 편곡 에, 결국 각자 자신의 파트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 이다. 이석원은 기타를 잡은 이래 온전하게 카피해본 곳이 다섯 곡이 넘지 않을 정도로 지독히 카피를 싫어했고, 때문에 편곡에 약하다. 그 러나 또 다른 기타리스트 정대욱은 하루가 멀다하고 카피를 해대는 스타 일로 편곡 아이디어가 대단히 풍부하여 곡 마다 옮아다니며 생명력을 불 어넣은 역할을 한다. "저는 음감이 후져서 좋아요" 이석원의 말이다. 절대 음감이 있네 어쩌 네 하며 으시대기 바쁜 뮤지션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적 가치관이다. " 만약 제가 음감이 좋아서 어떤 곡을 들을 때 그 곳의 코드기 모두 코 드 네임으로 제 머리속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곡을 들으며 즐길 수가 있 겠어요. 또 그랬다면 메이저 세 코드를 반복하는 <동경>같은 곡은 절대 만들 수 없었겠죠. 어떤 이들은 '또 메이져야?'할 때 제겐 그저 ,<동경> 일 뿐이거든요" <동경>은 가장 평판이 좋은 곡의 하나로, 지극히 단순한 코드에다 편 곡을 더하여 만들어졌지만, 머리속에 아련히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 는 매력적이고 흡인력 있는 트랙이다. 베이시스트 류기덕. 그는 현재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다. "틴에이지 팬클럽의 베이시스트 제랄드 러브(GERALD LOVE)를 좋아합니다. 폴 맥카트니도요." <쥐는 너야>와 <팬클럽>에서 그의 맬로딕한 베이스 라인은 주목할만한데 특히 E와 A단 두 개의 코드 만으로 기타가 진 행되는 <팬클럽>에서 류기덕은 곡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베이스 음의 진행을 들려주고 있다. 녹음 당시 프로듀서인 윤병주가 "이건 편곡 이 아니라 완전히 작곡"이라며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베이스가 독 자적인 멜로디를 전개하는 방식을 틴에이지 팬클럽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 하다. 이번 앨범의 믹싱 과정에서도 베이스의 멜로디 라인은 가능한 한 충분히 존중되었다. 힙합을 비롯한 모든 펑키(FUNKY)한 것도 멜로딕한 팝에 열광하는 드러머 유철상. 요즈음 피지카도 파이브(PIZZICATO FIVE)의 노미야 마끼에게 푹 빠져있기도 한 그는 하루종일 음악을 듣고 남은 시간에는 하루 종일 연습하는 노력파이다. 그는 애초에 <상업 발라드>라 명명 되었던 <쥐는 너야>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명색이 '발라드'임에도 불구 하고 괴이한 행진 드럼을 선보여 멤버들과 충돌을 빚은 적이 있다. 지금에 와서 그 곳은 독특한 드러밍과 함께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으로 꼽히는데, <쥐는 너야>의 작곡 크레딧에 유철상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여기서 연유되었다. 자의식강한 눈빛을 지닌 고교 2년생, 정대욱, 지금은 처음 들어왔을 때 그에게 파워 코드를 가르쳐 주었던 이석원보다 훨씬 기타를 잘 치게 된 글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앨범 모든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발관의 데뷔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의 부클릿에서 특이한 점은 각 곡마다 세세하게 어느 부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표기를 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편적인 사실들 중의 하나이다. 얼굴없는 밴드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완성하고 난 밴드는 다시 작곡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은 언뜻 보면 생경한 모습으로, '연주 못 하기 '자체 를 하나의 전략 이미지로 구사한 것이 아닌가 아는 추측에 반(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던 록 그룹은 연주도 못하고 게을러야 하지 않았던 가. "연주 못 하기를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저희 연주 경력 만큼 연 주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일년 반이 되어 앨범 한 장을 냈으니 이년 삼년째 되는 때엔 또 그에 맞는 작곡과 연주를 할 수 있어야 겠죠. 저희 는 성장할 것이고 언니네 이발관은 그 점이 즐겁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얼굴을 알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유는 하 지 않겠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무엇보다 사생활이 침해받 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크다. 지금껏 여러 신문, 잡지에 그들의 인터뷰가 나갔지만 한 번도 멤버들의 얼굴 사진이 여느 경우처럼 온전하 게 실린 적은 없었다. 이제는 이미 사진기자들과의 실랑이도 필요 없을 정도로 촬영 기피자들로 낙인이 찍한 셈이다. '마음을 다한 작곡과 신실한 연습' 언니네 이발관이 보여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정말 그약속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 는 것은 흔하게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 선사될 것이다. 그동안 무성하게 떠돌던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소문은 이제 그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그들의 앨범이 발매되어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소문처럼 펑크 그룹일까, 아니면 모던 록 그룹일까. 판단을 여러분에게 맡긴다. 과연 그들이 여기저기 기사거리로 등장하고 한국 록의 대안으로서 대중음악 역사의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할 자격이 있 는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비틀즈와 데이빗 보위와 산울림을 끔찍히도 좋아하는 네 명의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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